흐린눈을 하는 이유와 못 들은 척 할 때
세상의 모든 진실을 다 알아야만 할까요? 때론 내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애써 못 본 척, 못 들은 척 부정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와 비슷하게 요즘엔 흔히 흐린눈이라고 부르는 보고도 못 본척하며 마음을 애써 다잡을 때가 많은데요, 일종의 자기 합리화와 비슷한 부분도 많더라고요.
내가 보기 싫은 것과 듣기 싫은 소리는 끝까지 못 보고, 못 들은 걸로 유지하고 싶으니까요.
흐린눈과 안본눈
한 때는 '안 본 눈 삽니다!'가 유행 밈이었다면 요새는 흐린눈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가 더 많은 것 같아요. 안본눈이란 건 내가 보고 싶지 않았던 걸 보았을 때 안 본 걸로 되돌리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는 의미입니다.
확실히 안 본 눈과 흐린 눈은 사용하는 상황을 살펴보면 차이가 있어요. 어떤 영상에서 누군가 엄청 지저분한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내가 이 장면을 왜 봤을까 후회하며 안 본 눈을 찾게 되고, 만약 그 영상 속 주인공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이라면 흐린 눈을 하게 되는 거죠.
나는 분명 봤지만, 못 본 거다!
비슷한 개념으로 우리가 흔히 하는 행동 중에 분명 어떤 말을 들었으면서 끝까지 못 들은 척을 할 때도 있어요. 일부러 듣기 싫은 소리를 안 듣기 위해 딴청을 피우며 흐린 귀? 막힌 귀? 를 할 때가 있지 않나요?
못 들은 척 귀를 닫는 이유
흐린 눈은 눈을 게슴츠레 뜬 모습으로 흐릿하게 대상을 보는 모습을 뜻한다면, 비슷한 이유로 듣기 싫은 소리를 흐릿하게 듣기 위해서는 귀틀막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에 대한 잔소리나 듣기 싫은 무서운 이야기,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과거사 등 내가 끝까지 듣기 싫은 이야기들이 있잖아요.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면 즉시 자리를 피하거나, 만약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면 못 들은 척과 안 들리는 척을 할 수 있어요.
딴생각이나 다른 소리에 집중하여 애써 내가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을 외면하는 것이죠. 사람은 누구나 보기 싫은 것, 듣기 싫은 것이 있기 때문에 나를 방어하기 위해 이런 방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고 말아요.
아이들도 분명 바로 옆에서 가르치는데 딴청을 피우며 갑자기 노래를 크게 부르는 등 끝까지 안 들리는 척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듣기 싫은 건 안 듣겠다는 명확한 의사 표현인 셈이죠.
하지만 나의 선택으로 흐린 눈을 하고 안 들리는 척을 해보아도 결국 내가 보고 들은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나 자신도 이미 그걸 잘 알고 있고요. 아무리 피하려 해도 결국 눈과 귀를 크게 열고 진실을 마주해야 하는 순간들이 찾아오고 말더라고요.